Description
About me
나는 어린 시절 만화책, TV애니메이션을 광적으로 좋아하였다. 만화는 학업성적, 가족 혹은 친구와의 관계, 학교생활 등의 압박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만화는 환상 그 자체였으며 가짜 현실, 공상의 세계였다. 나는 그 망상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연장하고 싶어 하였고, 만화를 따라 그리거나 창작하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그림 그리는 행위는 만화와 함께 시작하였다. 나는 대중매체, 전자매체의 시대를 살며 이미지와 그것이 지니는 이야기로 욕망을 대체하였다. 내가 그림을 시작한 대에는 이처럼 대중매체의 영향이 크다.
그림을 학업 으로 시작한 것이아니라 놀이로 시작하였기에 미대를 가기 위한 입시는 나에게 큰 고난이었다. 타인에 의해 평가되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2번의 실패 끝에 2010년 숙명여대 회화과에 진학하였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나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였다. 자화상을 많이 그렸으며 그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일상을 지배하는 무기력함의 원인을 대학시절 내내 탐구하였다. 아직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나의 회의감과 무기력함은 현실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나의 욕망, 이상, 환상과 현실은 너무나 다르기에 거기서오는 실망으로 인한 무기력증에 빠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을 과거에는 자화상으로 현재는 드로잉의 재현으로 나타낸다.
Work / Education
‘환상은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하다’는 나의 작품 전체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이다. 나는 종이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괴리를 이야기 한다. 현실의 괴로움은 환상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지금을 잔인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히는 환상은 ‘순수’ 혹은 ‘욕망’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지금 없는 것’에 대한 갈구는 순수한 본성이며 얻고자 하는 욕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망은 녹록하지 않은 현실의 벽에 자주 부딪힌다. 나는 이 같은 외부의 부정적 타격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현실과 환상의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언제부터인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한 불확실과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심, 냉소, 회의와 같은 중간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삶의 태도는 그림에서 드로잉과 구겨짐, 정적인 화면구성으로 나타난다.
그림의 기초 단계인 드로잉은 가장 순수하며 자유로운 순간이다. 나의 드로잉은 환상을 나타내지만 환상적이거나 이상향의 형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다루어 친숙하고 편안한 재료(종이, 펜, 색연필, 연필, 수채화 물감, 붓 등)를 사용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자유로움 자체가 환상이다.
드로잉이 자유와 환상이라면 캔버스 페인팅은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드로잉이 ‘어린 나’라면 캔버스의 페인팅은 ‘어른의 나’이다. 드로잉이 환상과의 만남이라면 페인팅은 환상의 객관화이다. 나에게 종이는 순수와 대면할 수 있는 매개체이며 원초적인 환상의 공간이다. 종이의 ‘구겨짐’은 환상의 가벼움을 말함과 동시에 현실의 자아를 설명하기 위한 액션의 결과이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환상은 종이 위의 그림일 뿐임을 일깨우는 객관화의 과정이다. 이 같이 '구겨짐'은 더 이상 환상의 세계에 의지하지 않고 불확실한 세계(현실)로 나아가려는 자아이다. 이러한 자아는 불안하지만 현실을 인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다.
작품은 환상에 대한 갈망과 현실의 불안, 이 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환상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때론 만화처럼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상황을 환상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환상은 욕망을 지닌다. 환상이 나를 지배하고 흔들어 놓아 일상생활에 부정적 타격을 주지 못하도록 현실감각을 계속해서 환기시키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리고 현재는 환상과 현실 사이의 중심잡기에 대한 이야기를 드로잉과 구겨짐의 페인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현실을 향한 나의 회의적인 태도는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 되고, 이는 불확실한 삶에 대한 희망이 되어주기도 한다.